소년공에서 대통령 후보까지, 이재명의 인생 이야기! - 옥탑방 문제아들
1. 이재명 후보, 예능에서도 통할까요?
이재명 후보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이 있어요. 모니터를 해보면서 스스로 예능감을 평가해 봤다고 해요. 주관적으로는 90점짜리 아닐까 생각했다고 하네요. 예전에 함께했던 PD는 정치 말고 예능을 계속하자고 할 정도였다고 해요. 덕분에 그때 자신감을 얻었다고 하죠. 객관적으로 보면 예능감이 있다고 평가받기도 했답니다.
워낙 말을 잘하는 달변가라고도 불려요. 변호사 시절부터 그랬다고 하죠. 예전에 방송에서 아내와 함께 나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는데,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해요. 때로는 상대방이 약이 오를 정도로 논리적이었다고 하네요.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예능감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2. 정치인의 삶, 루머와 오해는 숙명일까요?
정치인으로서 루머와 오해를 겪는 것은 숙명과 같다고 해요. 처음에는 무지하게 화가 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너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하게 된다고 해요. 물리 법칙처럼 과하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지나치게 공격해오면 반격할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경호 인력이 있는데 왜 보호받지 못했냐는 루머에 대해 설명했어요. 사생활에 경호 인력을 쓰지 않고 공사 구분을 확실하게 한다고 말했죠. 집안에 경호원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며 루머에 대처했어요.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해명하며 루머를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루머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정치는 그런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는 모습이에요.
3. 패션 감각부터 별명까지, 인간 이재명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재명 후보의 패션 감각도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특히 찢어진 청바지 사진으로 빵 터졌다고 하네요. 이 사진은 예능 출연 당시 코디가 장난으로 한번 입혀보고 찍은 거라고 해요. 아내가 찍어준 사진인데 너무 심하게 찢어져서 화제가 되었다고 하죠. 아내가 안티팬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왔지만, 패션에 대해서는 열려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가죽 재킷을 입어보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어요.
정치인으로서 어필하고 싶은 이미지는 따로 있다고 해요. 사실은 매우 다정다감하고 사람들과 교감도 잘 되는 편인데 이런 모습이 잘 안 보인다고 아쉬워했어요. 일을 할 때 세게 밀어붙이는 면이나 살아온 과정 때문에 거칠다는 선입견이 생긴 것 같다고 하죠. 하지만 사실은 다정다감하고 눈물도 많은 보통의 인간이라고 말했어요. 외모에 대한 평가로는 약간 깐깐하거나 냉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속쌍꺼풀 때문인 것 같다고 하네요. 쌍꺼풀 수술 생각도 해봤지만, 눈이 안 보인다는 주변의 말 때문에 망설였다고 해요.
별명도 꽤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별명 스타일은 '고길동'이라고 밝혔어요. 머리만 내리면 정말 닮았다는 말에 웃기도 했죠. '싸움닭'이라는 별명은 시민 단체 활동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는 의미로 붙여졌지만 본인은 싫어한다고 하네요. 학창 시절 별명은 '콧찔이'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 코를 많이 흘려서 붙여진 별명인데, 그때는 다들 그랬다며 웃었어요.
4. 아내 사랑꾼 이재명, 애교쟁이일까요?
반전 수식어 중에 '아내 사랑꾼', '애교쟁이'라는 말이 있다고 해요. 아내 사랑꾼은 맞지만 애교쟁이는 누가 만든 거냐며 웃었어요. 하지만 아내와는 잘 지내려고 정말 노력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때 아내와 장난치고 노는 시간이 제일 즐겁다고 해요. 아내가 또 엄청 잘 받아준다고 하네요.
출근할 때 아내가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 주는데, 향수를 뿌려준다고 해요. 앞에서 뿌려주면 몸을 돌려 맞는다는 이야기에 애교쟁이 맞다는 반응이 나왔죠. 아내도 이런 모습을 좋아한다고 해요.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노력하는 모습이 진정한 사랑꾼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5. 옥탑방 시절의 고생,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젊은 시절 이재명 후보는 옥탑방에서 살았다고 해요. 옥탑방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선풍기도 소용없었고, 겨울에는 방안에 둔 물이 얼 정도였다고 하네요. 덜덜 떨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어요.
힘든 환경 속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환경이 너무 나빴고, 공부를 해서 인정받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공장을 다니면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때 집중력을 발휘하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고 해요. 같은 시간이라도 평소에 읽을 수 없는 분량을 짧은 시간 안에 다 읽었다고 합니다. 초인적인 집중력 덕분에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죠.
6. 사법고시 합격 비결은 무엇일까요?
사법고시 공부는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죠. 이재명 후보는 피할 수 없으면 총력을 다하게 된다고 말했어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듯이, 방법이 그것밖에 없으면 그렇게 된다는 거죠. 대학 가는 학력고사 공부나 공장을 다니며 검정고시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공장 다니며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때 집중력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어요.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양을 집중해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사법고시 공부도 이런 집중력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약간 황당한 이야기라고 해요. 장학금을 가장 안정적으로 많이 주는 대학을 선택했고, 그게 중앙대 법대였다고 합니다. 법대에 가보니 사법고시라는 것이 있고, 합격하면 판검사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네요. 학비 문제와 장애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이 길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7. 판사 대신 변호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법연수원 시절 상위권 성적으로 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판사 대신 변호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80년대 군사 정권 시절이라 학살한 정권에게 임명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임관을 거부한 것이라고 하네요. 젊은 객기일 수도 있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26살에 노동자를 위한 법률 사무소를 개업했는데. 그때는 한창 놀러 다닐 나이였고, 홍대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하네요. 노동자 출신이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죄책감도 있어서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아서 뭐 하겠냐는 생각으로 가족들이 남아있는 현장을 바꾸고 싶었다고 해요. 6개월에서 1년이라도 판검사를 하고 나오면 전관예우로 돈 버는 데 도움이 된다는 권유도 많이 들었지만. 한번 달콤한 길로 가면 못 나올 자신이 없어서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했다고 합니다. 개업하고 몇 년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젊고 경력 없는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이 오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이야기했어요.
8. 소년공 시절의 아픔,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이재명 후보는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 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요. 한 13살 때부터였다고 하네요. 공장에서는 납땜, 용접, 철판 자르는 일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철판 자르는 기계는 아주 무서웠다고 해요. 친구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교복 입고 가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원래 그렇게 사는 줄 알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학교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옛날 책에 나오는 것처럼 압정을 놓고 공부했다고 하네요. 책상에 압정을 거꾸로 붙여 놓고 자세가 틀어지면 찔리게 해서 졸지 않으려고 했죠.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찔려도 자고 있더라고 솔직하게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힘든 소년공 시절에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간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요.
9. 인권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임관을 거부하고 인권 변호사 또는 노동 인권 변호사 일을 시작했어요. 세상이 좀 더 공정해지기를 바랐고, 자신처럼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회를 누리고 공평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시민 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시립 의료원 만들기 운동을 하다가 수배를 당하기도 했죠.
시립 의료원 설립 조례가 의회에서 날치기로 폐기되자, 분노한 시민들과 함께 회의장을 점거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배를 당했다고 해요. 구속될 상황에 놓이자 교회 지하실 기도실에 숨어 있었는데. 그때 함께 운동하던 사람과 이래 가지고는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 우리가 직접 시장이 되자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교회 지하에서 정치 입문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죠.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하네요. 결국 시장이 되고 시립 의료원도 완공되어 어려운 시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어요.
10.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 어떤 의미일까요?
이재명 후보는 사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해요. 갈등이 아주 심한 편이었다고 하죠. 아버지가 무능하다는 생각과 사춘기 시절 환경미화원 일을 하는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겼던 마음 때문에 반발심이 컸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공부 문제로도 많이 부딪혔다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엄격함 속에서 심하게 단련된 것 같다고 말했어요. 평소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도와주셨다고 하네요. 검정고시나 고시 공부할 때 학원비를 몰래 보내주는 등 도움을 주셨다고 해요. 아버지가 주는 든든함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재명 후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6개월 전 위암이 재발해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다고 해요. 아버지는 합격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달라는 아들의 바람대로 실제로 6개월에서 8개월 정도 더 사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아들의 합격을 기다리셨던 것이죠. 심지어 이재명 후보의 생일날, 그것도 출생 시에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의식도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마지막 순간 아들에게 마지막 말을 들려주고 눈물 흘리며 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 슬픔과 후회가 컸다고 해요. 하지만 아버님은 아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리워했습니다.
11. 일기장 프로포즈, 정말 로맨틱했을까요?
이재명 후보는 아내에게 일기장으로 프로포즈를 했다고 해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바로 답을 듣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신 나름의 도박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내면을 통째로 보여주고 아내의 처분에 맡기겠다는 생각으로 일기장을 주었다고 해요. 가장 힘든 시절에 쓴 일기장이었다고 합니다.
일기장을 받은 아내는 처음에는 당황했다고 하네요.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반짝이지도 않는데 왜 이런 걸 주냐고 생각했다고 하죠. 하지만 일기장을 보고 결혼을 받아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며칠에 걸쳐 다 읽어보고 결정했다고 하네요. 일기장이 결혼까지 연결된 특별하고 로맨틱한 프로포즈였다고 할 수 있어요.
12. 눈물이 많아진 이유, 무엇일까요?
이재명 후보는 어릴 때 많이 안 울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고 해요. 슬픈 눈물을 제일 많이 흘린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도 운다고 하네요.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된다고 말했어요. 어릴 때는 남자는 평생 세 번밖에 안 운다는 생각에 참았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모습이에요.
마지막으로 운 것은 후보 선출 후 선대위 출범식 때라고 합니다. 그때 어릴 때 살던 집 사진과 함께 어머니 사진이 영상에 나왔는데, 참으려 했지만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하네요.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셔서 더 그러셨다고 말했어요. 가족들이 세상 사람들한테 힘든 일을 겪는 모습을 어머니가 가장 고통스러워하셨다고 합니다. 형님과의 갈등 문제로 어머니가 힘들어하셨고, 결국 그 아픔을 안고 돌아가셔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이야기했어요.
13. 정치인의 언어, 숨겨진 비밀이 있을까요?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 해요. '정치 언어 3단계'라는 것이 있다고 하네요. 민원을 얘기했을 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뜻이고. "적극 수용하겠습니다"나 "적극 검토하겠습니다"도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장기 검토해 봅시다"라고 하면 100% 안 된다는 뜻이고. "함께 노력해 봅시다, 방법을 찾아봅시다"는 지구가 멸망해도 안 되는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어요.
이재명 후보도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자기 보신을 위해 현장을 피하려고 "같이 봅시다, 노력해 볼게요, 방법이 있겠죠"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성남 시장이 된 후 시장실을 2층 홀로 옮겨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해요. 민원인들을 직접 만나면서 솔직하게 다 얘기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죠. 헛된 희망을 주지 않기 위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법률가답게 정확하게 가능한 사안인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등을 분류해서 설명해 줬다고 해요. "이건 됩니다"와 "이건 안 됩니다"를 명확하게 말해줬는데, 예상과 달리 멱살 잡는 사람 없이 수긍을 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고맙다고 박수치고 울면서 갔다고 하네요. 안 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희망 고문하는 것보다 솔직함이 오히려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소위 말하는 정치적 언어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14. 정치, 왜 적이 생길 수밖에 없을까요?
정치에서는 적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해요. 원래 정치는 상대가 있고 입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반드시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것을 조정하는 일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해 충돌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설명했어요. 첫 번째는 모른 척 피해 다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쪽 가서는 해 준다 하고 저쪽 가서는 안 한다고 하는 것인데, 요즘은 금방 들통나서 안 된다고 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반대로 결론을 내는 방식을 택한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반대하거나 찬성하더라도 어찌 됐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론을 감수하는 것이 정치인의 몫이고, 합의되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을 강제로 할 권한이 정치인에게 주어졌다고 설명했어요. 이해 관계자가 충돌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렇게 결정을 내리면 정치인에게 타격이 오고, 이재명 후보처럼 적이 많은 사람이 된다고 말했어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적이 생기는 것은 정치의 숙명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15. 이재명 후보의 마지막 꿈은 무엇일까요?
이재명 후보에게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물었을 때,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요.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은 좀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희망도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감하게 도전할 수도 있고 그래도 불안하지 않고, 누가 마지막 순간에는 듬직하게 버텨주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어요.
더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죽을 때 "재밌었어, 후회되지 않아"라고 말하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비전과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이재명 후보의 진정한 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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